어떤 말들은 시간이 지나도 희미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선명해져요.
그리고 그 말이 떠오를 때마다, 마치 그 순간으로 돌아간 듯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듭니다.
나 때문에 직원들이 너무 편하게 있다..
나 때문에 진료가 꼬였다.
나 때문에 직원이 그만뒀다.
그때 그 말들.. 나의 대한 헌담
아직도 제 귀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말은 눈에 보이지 않는 흉터를 남깁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말이 뭐 어때서? 때린 것도 아니잖아.”
“회사에서 그 정도는 참아야지.”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저는 확신합니다.
말이 때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긴다는 걸요.
손에 난 상처는 약을 바르고 시간이 지나면 낫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남은 상처는
아무도 보지 못하고, 아무도 돌봐주지 않습니다.
그게 더 힘든 이유예요.
다친 손을 보고 “괜찮아?”라고 묻는 사람은 많습니다.
하지만 무너진 마음을 보고 “힘들지?”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정말 드뭅니다.
내가 들었던 말들, 그리고 무너진 하루
저는 병원에서 근무했습니다.
경력이 오래됐기때문에
환자 응대, 예약 관리, 환자 상담, 전화 상담,보험 서류업무, 진료 보조까지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했죠.
다른 직원들도 바쁜거 알고있기에 뭘 바라고 한건 아니였지만
서로 도와주면 좋지! 라는 생각에 제 업무가 아니어도 지시가 내려오면 성심껏 도와줬죠.
그런데 그 도움이 돌아온건....
도움이 아니라 ‘공격’이었습니다.
"나 때문에 직원들이 너무 편하게 있다. 직원들을 잡아라!"
"나 때문에 진료가 꼬였다."
"나 때문에 직원이 그만뒀다."
저 험담들이 반복될 때마다
저는 점점 작아졌습니다.
가장 아팠던 건, 그 말의 힘이 나를 정의해버린다는 것
언어폭력이 무서운 이유는
그 말들이 나를 규정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멍청한 사람인가?’
‘나는 진짜 쓸모없는 직원인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면
가해자가 원하는 그림이 완성됩니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들의 말이 곧 ‘진실’처럼 굳어집니다.
실제로 저는 그랬어요.
매일같이 자책했고,
퇴근 후에는 스스로를 탓하며 울었습니다.
“내가 못해서 그랬나 봐. 내가 문제였나 봐.”
이 생각에서 벗어나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문제는 제가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런 말들을 쉽게 내뱉는 사람,
그들이 만든 조직문화가 문제였다는 걸요.
가해자는 이렇게 말하겠죠?
“그냥 지적한 거야.”
“기분 나빴으면 미안,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
하지만 그 지적이 매일 반복되고,
인격을 건드리고,
존재를 무시하는 형태라면
그건 ‘지적’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언어폭력은 물리적인 폭력보다 더 교묘합니다.
흉터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별거 아니다”라는 말로 쉽게 덮이거든요.
그리고 피해자는 점점 침묵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말해야 합니다.
저는 지금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부당한 지시,
그리고 그 안에서 반복된 언어폭력에 대해 싸우고 있어요.
이 싸움이 쉽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하루에도 열 번은 포기하고 싶습니다.
“그냥 조용히 넘어가면 안 될까?”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하지만 포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싸움은 저 혼자만을 위한 게 아니니까요.
그 곳에서는 저 이전에 있었던 피해자를 저는 목격했고
제가 그만둔 지금도 그 곳에 들리는 이야기는
아직도 저 같은 피해자가 있다는거에요.
다음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누군가 또다시 같은 말에 상처받지 않도록,
제가 막고 있는 거니까요.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그 말이 있나요?
“네가 문제야.”
“그 정도는 다 참아.”
“너 때문에 힘들어.”
그 말 때문에
밤마다 눈물이 났나요?
출근길이 두려웠나요?
그렇다면,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존중받는 건 기본이에요.
인격은 지켜져야 합니다.
그게 안 되는 직장은
당신이 아니라 그 조직이 잘못된 겁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저는 아직 싸움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이 싸움이 나를 무너뜨리기 위한 게 아니라,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는 걸요.
그리고 당신에게도 말해주고 싶어요.
“당신 잘못 아닙니다.
당신은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말은 상처가 될 수도 있지만,
말은 힘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 글이
당신에게 작은 힘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서로에게 그렇게 힘이 되어줄 수 있길 바랍니다.
누군가의 말이 상처였다면,
이제 우리의 말이
치유가 될 차례입니다.